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렌 버핏 (문단 편집) == 생애와 커리어 == 버핏은 젊어서는 증권중개인이었고 공화당 하원의원을 지낸 하워드 호만 버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빌 게이츠]]도 부친은 변호사, 모친은 은행 임원으로 상류층에 속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증권회사에서 잠시 근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그레이엄의 투자 전문 회사인 '그레이엄-뉴먼'에서 투자 기법을 배웠다. 본인도 그래서 어린 시절을 얘기해줄 때, 집안 이야기보다는 어렸을 때 자신이 용돈 벌러 했던 알바에 관한 일화를 많이 이야기 해준다. 가령 식료품점 점원이었을 때라든지 식당 버스 보이였을 때라든지 그런 얘기를 많이 해준다. 6살 때 [[껌]]과 [[콜라]]를 팔았다. '''11살 때 차트를 보고 Cities Service 우선주를 사면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Cities Service 주식을 38달러에 사서 40달러 정도에서 매도했는데 나중에 200달러를 넘었기에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12살 쯤에 [[워싱턴 D.C.]]으로 이사가게 된다. 선생님이 [[AT&T]] 주식을 갖고 있다고 하자 AT&T를 [[공매도]](!)한 자신의 거래내역서를 보여줘서 --능욕-- 심리적 압박감을 주기도 했다. 15살 때 오마하 북부의 농지 49,000평을 샀다. 17살 때 [[핀볼]] 머신 대여 사업을 시작했다. 10대 후반에 이미 자기의 학교 교사들보다 많은 월수입을 기록하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월반]]을 해서 동기들보다 일찍 대입 자격을 획득했다. 그러나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투자와 사업으로 이미 경제적 성공을 이뤘기에 자신을 사회인으로 생각했고 대학 진학은 시간낭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학이 자신을 가르치기에는 수준미달이라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결국 대학 진학을 하게 된다. 본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 경제학부에서 2년간 배우다가, 네브래스카 대학으로 옮긴 뒤 조기졸업으로 학사를 취득하고, [[컬럼비아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를 취득했다. 네브래스카 대학 학부 졸업 후 그는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지원했으나 면접을 망쳐서 떨어졌다. [[하버드]]의 모 교수가 "당신은 하버드에 지원하기에는 너무 어리다"라고 한 일화가 있다. 당시 일화로 미루어보면 그는 한동안 낙담했다 한다. 그의 [[평전]](스노볼)에 따르면 버핏이 그의 친구에게 말하길 "난 하버드의 네임밸류, 즉 간판이 탐이 났던 것 같아. 하버드가 원하는 인재상이랑 나랑 맞지 않았던 것 같아. 반성해야지."라고 말했다. 하버드에 떨어진 후 다시 대학원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찾은 것이 바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이다. >데이비드 도드 교수님과 벤 그레이엄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되어 있더라, >나는 두 분이 올림포스 산 같은 데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더라, 만일 내가 입학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그곳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난다. 그레이엄은 [[필립 피셔]]와 함께 버핏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본인 왈 "15%는 피셔에게, 85%는 그레이엄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만약 그 때 하버드에 바로 합격했다면 오늘날의 그는 없을 것이다. [[주식]]투자에 관련된 서적 중에서 그레이엄과 피셔의 것을 능가하는 것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35살에 이미 [[백만장자]]의 반열에 들었던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고 CEO가 된다. 이후 주식투자 외에도 보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단순 지분투자 외에 적극적으로 여러 기업들을 버크셔 자회사로 편입시키기 시작한다. 2007년에 내한한 버핏은 한국의 기업들 중에서 20여 개의 종목에 투자했다고 밝혔는데 [[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07102592307|#]] 구체적으로는 [[기아자동차]], [[신영증권]], [[현대제철]], [[KT&G]], [[대한제분]], [[POSCO]]의 주식을 보유했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포스코는 모든 주식을 2010년대에 털고 나왔다고 했는데, 그럴 만한 이유가 최근에 밝혀졌다. [[삼성증권 유령주식 사태]]. [[포스코]] 참조. [[2018년]] 현재는 그냥 한국 증시 투자 자체를 거의 접은 듯. 한국 대부분 기업의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실제로 버크셔 해서웨이가 5% 이상의 주식을 보유하여 [[대주주]]로 [[공시]]된 상장기업은 현재 단 한 곳도 없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을 때도 버핏은 유유히 살아남아 러브콜을 했던 [[골드만삭스]]의 대주주가 되었다. 반대로 이 금융위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베어 스턴스]]의 몰락과정에서 베어스턴스는 버핏에게 제발 투자 좀 해달라고 사정했었다고 한다. 이에 버핏은 경영진이 베어스턴스에 투자한다는 조건 아래 자신도 투자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경영진은 그에 거절했다. 버핏은 베어스턴스에 끔찍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경영진도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들도 자기 회사에 투자 안하면서 남에게 해달라고 하는 건 무슨 도둑놈 심보인지...~~ 2012년에 [[전립선암]] 1기 판정을 받았다. 전립선암은 나이가 많은 고령의 남성에게서 곧잘 발병하는 암이다. 2013년에 트위터에 가입했다. 포춘지에 기고한 글을 많은 사람이 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가입했다고 한다. 2020년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영향/경제|경제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으며]] 일어난 [[2020년 주가 대폭락]]으로 인해 수많은 투자 구루들이 피해를 봤다. 버핏 역시 예외가 아니었지만, 미국시장의 주식이 너무 비싸다면서 대부분의 자산인 150조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코로나의 폭격에서 빗겨나가면서 '''그야말로 쓸어담을 일만 남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었다.[* 다만 여객기 업체 주식은 손절하며 일부 손실을 입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